Korea-China Relations

경희사이버대학교 이원봉교수님 강의 내용 정리

In this course, we are going to analyze and understand the situation and the feature of political,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elationships between China and Korea.

한중관계론은 한국과 중국과의 정치관계, 경제교류관계, 사회문화교류관계 등과 같은 양 국간의 여러 분야에서의 관계들의 현황과 특징 등을 분석하고 이해한다.

한중관계론

1. 한중관계사

1) 과거 중국의 북방정책

  • 진(秦)의 통일과 북방정책 – 변방의 안정을 위해 침략평정 방책 또는 중화사상에 입각한 화친책 동원
  • 명(明)・청(淸)대 이후의 북방정책 – 조공(朝貢)제도에 의한 군신관계 수립
  • 근대 이전 한중관계에 양향을 미친 가장 큰 요인 – 주변환경 보다는 한반도환경 자체, * 당시 중국이 지역패권국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였기 때문임

2) 근대 이전 중국과 한반도관계

(1) 수(膸)・당(唐) – 고구려 관계

  • 적대관계 – 안보상 상호 위협적인 존재 한중관계론 1차시 2강 – 수문제의 고구려에 대한 조공과 군신관계 요구, * 수나라 압력에 대한 고구려의 적극적인 저항
  • 수나라의 고구려 침략 – 수 문제(文帝)의 침략(30만 대군 동원)과 실패 – 수 양제의 침략(612-614, 3차례의 침략)과 실패, * 수나라 멸망의 직접적이 요인이 되었음
  • 당나라의 고구려 침략 – 당 태종의 침략(644, 10만)과 실패 – 고구려의 적극적인 저항, 당나라의 침략 격퇴
  • 수당 연합군의 고구려 침략 – 당 고조와 신라 연합군의 고구려 평양성 점령(668) * 수당 연합군에 의해 백제도 멸망(660)

(2) 당(唐) – 통일신라 관계

  • 당과 신라의 대립 관계 – 당의 한반도 병탐 * 웅진도독부(백제 지역), 안동도호부(평양), 계림대도독부(신라 지역) 설치 – 신라 문무왕의 8년간의 항쟁 – 신라의 안동도호부 축출(677), * 대동강 이남 차지
  • 통일신라의 대당(對唐) 친화외교 추진 – 대동강 이남 지역에 대한 통일신라의 지배권 인정(성덕왕 34년, 735년) – 우호관계 유지

(3) 송(宋)・원(元) – 고려 관계

  • 송과 고려의 선린 관계 – 송의 지역패권 장악의 한계 * 송의 경우 거란, 여진, 몽고 등의 침략에 대처하는 데 국력을 집중하였음
  • 원과 고려와의 주종 관계 – 고려를 원나라의 부마국으로 삼은 주종관계
  • 고려의 정책 – 북방민족의 강성으로 압록강 부근까지만 진출 – 북방민족의 남침을 방비하는 데 국력을 집중, * 거란의 침략(1015∼1019), 몽고의 침략(1231∼1238) – 국토유지파가 북진파보다 우세 * 이성계(북진파)의 최영을 중심으로 한 북진파 제압

(4) 명(明)・청(淸) – 조선 관계

  • 조선의 명에 대한 사대교린(事大交隣)정책 한중관계론 1차시 2강 – 조선의 명에 대한 사대의 예 표명 – 명의 조선 지원, * 임진왜란 시 명의 군대 파견(1593)
  • 조선의 청에 대한 사대교린(事大交隣)정책 – 청의 조선침략: 병자호란(1636) – 조선의 청에 대한 군신의 예 표명
  • 구한말 한중관계 – 청일전쟁에서의 중국의 패배로 청의 조선에 대한 종주국의 지위 약화

2. 국가수립 직후의 한중 관계

1) 갈등관계의 시기

(1) 적대시기(1950-1958)

  • 한국과 미국과의 동맹관계 형성 – 공산주의 세력 억제 – 중국과 북한 압박 – 한중간 접촉 단절
  • 중국의 한국에 대한 적대적 칭호 사용 – 「남조선 괴뢰집단」, 「남조선 매국집단」
  • 중국과 북한과의 혈맹관계 형성 –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1950) – 중국의 북한 지원

(2) 대립시기(1959-1970)

  • 이념적 대립 – 한국의 반공정책 * 한국정부의 공산주의 국가들에 대한 적대정책 – 중국의 반자본주의정책 * 중국의 자본주의진영 견제
  • 감정적 대립 – 중국에 대한 한국국민의 적대감정 심화 * 반공정책과 한국전쟁의 영향

☞ 1960년대 중국-북한 관계 냉각화

  • 북한의 주체사상과 양다리외교(대중국・소련 동시외교)
  • 친중파 김창만, 남일 숙청(1966.10)
  • 김일성의 방중 단절(1961-1975)

(3) 일방적 접촉 시도시기(1971-1982)

  • 동북아 정세의 변화 – 중국-미국 간 관계 개선 * 미국 닉슨대통령의 중국방문(1973.2) – 중국의 UN 가입(1971.10) – 중국-일본 간 수교(1972.9) * 중국의 폐쇄적 개발전략에서 개방적 개발전략으로 전환
  • 한국의 「中華人民共和國」 정식 칭호 사용(1973.2) – 한국외무부성명에서 「중화인민공화국 당국」이라는 명칭 사용
  • 한국의 「6.23선언」(1973) “호혜평등의 원칙 하에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는 국가와도 서로 문호를 개방한다” (할슈 타인원칙 포기) – 중국과의 문화개방 가능성 시사
  • 한중간 교류 시도 – 한중간의 간접무역 시작(1979) – 조선족의 한국방문 허용(1982)

중국외교부장 황화(黃華)의 한반도관계 연설(‘80.1.25): 중국외교부 간부회의 석상에서의 연설 “조선의 통일은 오로지 평화적 방식을 통하여 남북쌍방이 스스로 원하며 외래의 간섭이 없는 상황하에서 추진되어야 하며……..중국은 주한미군의 입장을 양해한다.” “조선은 「소련카드」를 갖고 있으나 우리도 「남조선카드」를 갖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조선이 소련일변도로 기운다면 우리도 똑같이 뒤돌아 서서 남조선을 지지할 것이다“ ”남조선과 중국관계의 대문은 현재 명백히 닫혀있는 상태이나, 자물쇠를 잠근 것은 아니며 언제 라도 열 수가 있다“

2) 관계개선의 시기

(1) 해빙기(解氷期 1983-1992)

  • 양국 간 접촉 시작
  • 중국 민항기 납치사건(1983.5.5-5.10) – 한중 정부 관계기관이 직접 접촉 – 상호 정식 국명 사용
  • 중국 어뢰정 사건(1985.3.23) – 납치된 중국어뢰정의 한국 영해 침범 – 중국 어뢰정과 승무원 전원을 중국 측에 인도(3.28) – 쌍방 대표가 각기 자국정부를 대표, 대화의 창구가 마련
  • 한중간 사회문화 교류 개시 – 재중동포의 모국방문 증대 – 체육교류 증대 * 서울아시안게임(1986), 서울올림픽(1988)에 중국대표단 참석 – 대한민국 칼 여객기의 중국 영공 통과 허용
  • 최초의 정치접촉 시도 – 양국 고위층의 비밀접촉(동경, 1987.11) * 한국 민정당대표와 중국공산당과의 최초의 정치적 공식 접촉 – 한국의 무역대표부 설치 제의 * 한국의 직접무역 요구에 대해 중국은 유보적 입장 표명
  • 경제교류 시작 – 1980년부터 간접무역이 시작 – 중국은 산동성(山東省)과 랴오닝성(遼寧省)을 한국에 개방키로 결정(1988.4) * 정경분리원칙에 입각 – 한중간 직교역을 위한 제반 사항 합의(1988.4.5)

(2) 한중수교 이후(1992∼현재) o 1992년 8월 24일 정식으로 국가수교

  • 기본적 요인 – 한국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 – 중국의 적극적인 개혁개방정책 * 중국 덩샤오핑의 경제우선주의에 입각
  • 중국이 수교의 조건으로 제시한 내용 – 중국은 국가수교의 전제조건으로 「하나의 중국」원칙을 제기 – 한국은 이를 수락 – 한국과 대만과의 국교단교로 이어짐
  • 한국을 중요한 경제협력 상대로 인식하게 된 주요 요인 – 한국이 추구해온 경제발전 모델이 중국에 적절하다고 판단
  •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 – 자국의 체제강화와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전개 – 한반도의 안정을 요구 –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는 부정적인 입장 – 남북대화를 직・간접으로 지지

3) 한중수교 이후 중국・북한 관계의 변화

(1) 냉각기

  • 1990년대 초 중․북한관계 급냉각 – 한중수교(1992.8) 직후 양국 관계 급냉각
  • 김일성 사망(1994.7) 이후 중․북한 간 최고위급 교류 중단
  • 황장엽 망명사건(1997.2) 이후 북한의 중견급 간부 방중도 거의 중단

(2) 관계 회복

  • “북한 국가 대표단” 방중(1999.6)을 계기로 북중 관계 회복 –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영남을 단장 한 대표단
  • 상호 대표단 교환(1999.10) – 북중간 수교 50주년 기념

(3) 과거 전통적 우호관계로 회복

  • 최고위급 지도자의 상호방문 재개 – 김정일 국방위원장 방중(2000.5) – 김정일 국방위원장 방중(2001.1) – 장쩌민 주석 북한 방문(2001.9)

3. 한중 간 정치안보관계

1) 개 요

  • 상호 고위급인사 교류 활성화 – 수교(1992.8)후 정상간 교류는 물론 당・의회 등 교류 증대
  • 중국은 한국의 대북정책에 대해 긍정적 평가 – 한국의 포용정책과 남북한 간 화해・교류・협력관계 지지 – 한반도 평화․안정을 위해 건설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입장 표명
  • UN 및 APEC, ASEM 등 국제무대에서의 협력관계 강화 – 한반도 평화・안정 유지 및 역내 경제・안보분야 협력 증진

2)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

(1) 대한반도 3대 정책의 기조

  1.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유지
  2. (남북간의 대화와 협상을 통한) 자주적인 평화통일 실현 지지
  3. 한반도의 비핵화 주장

☞ 한반도 관련 문제 발생 시 중국의 입장 대한반도 3대 정책 지향하되 중국은 3대정책의 기조 원칙에 부합되면 지지하되, 부합되지 않으면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해 왔음

(2) 한국의 평화통일정책 지지

  • 남북대화를 통한 긴장완화 및 궁극적인 자주・평화적 통일 지지
  • 한국의 대북한 포용정책(햇볕정책) 지지 –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평가 *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에 환영과 지지를 표명하는 중국외교부 성명 발표

(3) 한반도문제 해결을 위한 다자회담 지지

  •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마련을 위한 다자회담 지지 – 4자회담, 6자회담 등
  • 평화협정체결의 주체에 대한 한국의 입장 지지 – 남・북한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한국의 입장 지지

(4) 북한의 핵・미사일개발 반대

  • 남・북한 어느 쪽의 핵보유 및 대량살상무기 확산에도 반대한다는 입장 – ‘한반도의 비핵화’ 지지
  •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지지 – 한・미・일의 대북 군사 제재조치 반대

3) 한중 간 정치관계의 발전

(1) 한중 관계의 비약적 발전

  • 수교 이후 관계 급진전 – 1992년 8월 수교 이래 모든 방면에서 비약적으로 발전
  • 포괄적 관계 형성 – 경제 분야는 물론, 정치・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전면적・포괄적으로 발전
  • 실질 분야에서의 중요한 파트너로 발전 – 경제․통상은 물론 정치・사회문화 교류 증대
  • 중요한 대화 상대자로 발전 – 한반도문제는 물론 동아시아 지역의 안정과 번영을 함께 논의

(2) 중국의 건설적 한반도정책

  1. 한국의 대북 포용정책 지지
  2. 남북간 화해・교류・협력 관계진전에 대해 긍정적 평가
  3. 한반도 평화・안정을 위한 건설적 역할 표명

(3)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로 발전

  • 김대중 대통령 중국 방문(1998.11) – “한중협력 동반자관계” 설정
  • 주롱치(朱鎔基) 총리의 방한(2000.10) – 한 차원 높은 “전면적인 협력 관계”로 확대․발전시키기로 합의
  • 노무현 대통령 방중(2003.7) – “전면적 협력동반자관계”에 합의
  •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방한(2005) – “전면적 협력동반자관계” 심화 발전에 합의
  • 이명박 대통령 방중(2008.5) –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에 합의

(4) 중국의 필요성 증대(한국의 입장)

  • 한국의 입장에서 중국의 협조는 필수적
  • 한반도 평화 및 통일에 기여할 수 있도록 중국의 역할 유도 필요
  • 세계경제의 확대와 중국과의 교역의 필요성 증대
  • 양국 간 문화교류의 증대 * ‘한류’ 분위기 확산

(5) 다자간 협력 모색

  • 국제기구에서의 협력 모색 – WTO, APEC, ASEAN+3, ASEM 등 – 각종 다자무대에서 상호 관심사와 협력 확대 방안에 대해 긴밀히 협의하여 왔음

4. 분야별 한중 간 교류 추진

1) 정치안보 교류

(1) 정상 회담

  • 1992년 노태우 대통령의 중국방문(1차 정상회담) 이후 매년 정상회담 개최
  • 전면적 협력동반자관계로 발전

(2) 국방교류

  • 주중 무관부 개설 (1993.12.30)
  • 주한 중국 무관부 개설(1994.4.1)
  • 국방장관, 군대표단 상호 방문

2) 한중 경제관계

(1) 교역 부문의 발전

  • 교역의 급증 * 수교 당시 50억불 수준에 불과하던 한ㆍ중 교역규모가 2010년 말에는 약 1,884억불 규 모로 확대되어 30배 증가되었음(한국무역협회통계).
  • 중국은 한국의 최대 수출대상국 * 중국은 2003년부터 우리의 최대 수출대상국이 되었음

(2) 투자 부문의 발전

  • 투자의 급증 * 한국은 연간 기준 2004년 중국의 최대 투자국이 되었다가, 2011년 이후 누계기준 6 위 의 투자국으로 자리잡고 있음.

(3) 경제교류의 비약적인 발전의 배경

  • 양국 경제가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음
  • 양국의 관계 발전과정에서 서로가 얻는 경제적 이익이 매우 큼
  • 지리적 인접성, 역사적 유대성 및 문화적 유사성 등이 뒷받침 하고 있음 * 2010년 6월 한중 정상회담 시, 양국은 2015년까지 3천억 불 교역목표 제시 한중관계론 1차시 2강  관계

☞ 총영사관 설치 현황

  • 한국측: 주상해 총영사관 (‘93.7), 주청도 총영사관 (‘94.9), 주심양 총영사관 (‘99.7 영사사무소 개설, ‘03.4.17 총영사관 승격), 주광주 총영사관 (‘01.8), 주성도 총영사관(‘05.2), 주서안 총영사관 (07.9), 주무한총영사관(‘10.10)
  • 중국측 : 주부산 총영사관 (‘93.9), 주광주 영사사무소 (07.3)

◈ 학습 정리

  1. 국가수립 직후 한국전쟁의 결과 한중관계는 갈등적인 관계 속에서 교류가 단절되 었다. 1983년 중국민항기 납치사건을 계기로 한중간의 접촉이 시작되었고 이후 경 제, 사회문화교류가 시작되었다.
  2. 1992년 정경분리의 원칙과 ‘하나의 중국 원칙’에 입각하여 한중수교가 이루어졌다. 한중수교 직후 북한과 중국과의 교류가 중단되었으나 1999년 북중수교 50주년을 계기로 북중 관계가 정상화되었다.
  3. 1992년 한국과 중국 양 국 간의 국교수교로 양 국간의 경제교류가 급증하기 시작 하였다. 1998년 한중간 협력동반자관계가 설정되었고 2008년에는 전략적 협력동 반자관계로 발전하였다.